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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다음 해법_로컬넥스트
김용한 상권브랜드 컬럼(4)_백년시장은 오래된 시장이 아니라 다시 해석된 시장이어야 한다 본문

“전통은 오래 버틴 시간만으로 팔리지 않는다.
오늘의 고객이 이해할 수 있는 경험으로 다시 태어날 때 시장은 브랜드가 된다.”
백년시장은 오래된 시장에 붙이는 명예로운 이름표가 아니다.
오랜 세월을 견뎌 온 시장이 오늘의 고객에게 다시 선택받을 수 있도록 새롭게 해석하는 일이다. 시장의 나이가 70년을 넘었다고 해서 고객이 저절로 감동하지는 않는다. 오래된 간판, 낡은 골목, 오랜 단골의 기억은 분명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그 자산이 고객의 방문 이유로 바뀌지 않으면 시장은 과거의 시간 안에 머문다.
전통시장은 지역의 시간을 가장 깊게 품고 있는 공간이다.
어느 시장에는 전쟁 이후 가족의 생계를 지켜 온 노점의 기억이 있고, 어느 시장에는 새벽마다 농민이 들고 온 첫 수확물이 있으며, 어느 시장에는 어머니의 손맛과 단골의 이름이 남아 있다. 이런 시간은 대형마트가 흉내 낼 수 없고, 온라인몰이 배송할 수 없는 자산이다. 문제는 그 자산이 고객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야기는 많지만, 고객이 걸으며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정리되지 못한 시장이 많다.
2026년 백년시장 육성사업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70년 이상 된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10곳을 선정해 2년간 최대 30억 원을 지원하고, 시장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브랜드화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지원의 축도 단순 시설 개선이 아니다. 시장의 이야기를 찾고, 그 이야기에 맞는 공간을 조성하며, 체험프로그램과 굿즈, 특화상품을 개발하는 구조다. 정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오래된 시장을 보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국내외 고객이 경험할 수 있는 브랜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백년시장은 ‘오래됨’이 아니라 ‘오늘의 해석’으로 살아난다
오래된 시장이 모두 백년시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백년시장은 오래되었다는 사실보다, 그 오래됨을 고객이 어떻게 느끼고 경험하느냐가 중요하다. 고객은 “이 시장은 70년이 넘었습니다”라는 설명만으로 오래 머물지 않는다. 대신 이 골목에서 왜 이런 음식이 남았는지, 이 시장이 지역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지켜 왔는지,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과 먹을 수 있는 한 끼가 무엇인지를 경험할 때 마음을 연다.
전통은 박제되면 무겁고, 경험이 되면 고객 곁으로 다가온다. 시장 입구에 오래된 사진 몇 장을 붙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사진 속 이야기가 시장 투어의 동선이 되고, 대표 먹거리의 이름이 되고, 상인의 설명이 되고, 아이가 참여하는 체험이 되어야 한다. 오래된 방앗간은 지역 식문화의 기억이 될 수 있고, 3대째 이어 온 반찬가게는 가족의 밥상을 지켜 온 이야기로 풀 수 있다. 오래된 약재상, 포목점, 국밥집, 떡집도 고객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다시 정리되어야 한다.
나는 현장에서 오래된 시장일수록 이야기가 많지만, 정작 고객에게 들려줄 문장은 부족한 경우를 자주 본다.
상인은 “우리 시장은 오래됐어”라고 말하지만, 고객은 무엇이 오래되었고 왜 특별한지 잘 모른다. 역사라는 말은 크지만, 고객은 작은 장면으로 기억한다. 오래된 가마솥에서 나는 김, 새벽에 손질한 생선, 할머니가 추천해 준 제철 나물, 시장 안쪽 국숫집의 낮은 의자 같은 장면이 고객의 기억에 남는다. 백년시장은 이런 장면을 발견해 하나의 브랜드 경험으로 엮어야 한다.
스토리, 공간, 상품이 따로 놀면 백년시장은 힘을 잃는다
백년시장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스토리 기획, 공간 조성, 상품개발이 따로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스토리는 있는데 공간이 어수선하면 고객은 몰입하지 못한다. 공간은 예쁘게 바뀌었는데 살 것과 먹을 것이 약하면 사진만 남는다. 굿즈는 만들었지만 시장의 이야기와 연결되지 않으면 기념품 가판대에 머문다. 백년시장은 이 세 가지가 하나의 경험으로 이어질 때 힘을 얻는다.
스토리 기획은 시장의 과거를 미화하는 작업이 아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새롭게 보여 줄지 판단하는 일이다. 공간 조성은 벽을 칠하고 조명을 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고객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를 걷고, 어디서 쉬고, 무엇을 먹고, 어떤 장면을 사진으로 남길지 설계해야 한다. 상품개발은 로고가 들어간 기념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시장의 음식, 장인성, 지역 농산물, 주변 관광지, 로컬창업자의 감각을 연결해 구매할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
백년시장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오래됨의 상품화’에만 머무는 일이다.
시장의 삶은 빠지고, 사진 찍기 좋은 장식만 남으면 백년시장은 브랜드가 아니라 테마 세트장이 된다. 복고풍 간판을 달고, 포토존을 만들고, 포장지만 바꾼 굿즈를 진열하는 방식으로는 고객의 시간을 오래 붙잡기 어렵다. 시장의 본질은 여전히 장사다. 좋은 상품, 믿을 수 있는 가격, 친절한 응대, 다시 먹고 싶은 음식, 걷기 좋은 동선이 함께 있어야 한다.
【표】 백년시장을 브랜드로 바꾸는 다섯 가지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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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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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바뀌어야 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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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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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시장”이 아니라 고객이 기억할 대표 문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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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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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핵점포, 먹거리, 쉼터, 체험공간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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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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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의 손맛과 세월이 고객에게 들리는 짧은 이야기로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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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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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체험, 굿즈, 특화 먹거리가 시장 스토리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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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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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표시, 위생, 안전, 다국어 안내가 고객의 불안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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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는 좋은 운영 위에서 오래간다.
오래된 시장이라는 이유로 고객이 불편을 참아 주던 시대는 지났다. 바가지요금, 불친절, 위생 불안, 안내 부족, 복잡한 동선은 전통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의 문제다. 백년시장 사업의 추진과제에도 다국어 메뉴판, 외국인 쇼핑 여건 개선, 가격표시제, 식품 위생, 안전관리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감성은 고객을 부를 수 있지만, 신뢰가 없으면 고객은 다시 오지 않는다.

국민이 평가하는 시대, 시장은 고객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이번 백년시장 사업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국민 참여평가다.
일반 국민, 재한외국인, 인플루언서 등이 후보 시장의 발표를 듣고 평가에 참여한다. 시장을 실제로 이용할 소비자의 눈으로 관광 매력도를 보겠다는 방향이다. 이 변화는 전통시장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제 시장의 가치는 행정자료 안에서만 증명되지 않는다. 고객이 듣고, 보고, 걷고, 먹고, 사고, 다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전통시장 사업은 내부 논리에 머무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는 역사가 깊다”, “상인들이 열심히 한다”, “지원이 필요하다”는 말은 맞지만, 고객에게는 충분하지 않다. 고객은 왜 가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어느 입구로 들어가야 좋은지,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하는지, 어느 점포가 오래된 곳인지, 아이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외국인 친구를 데려가도 불편하지 않은지 알고 싶어 한다. 백년시장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한류와 지역관광의 흐름도 백년시장에는 기회다.
외국인 관광객은 한국의 전통시장에서 거창한 유적만 찾지 않는다. 김이 나는 길거리 음식, 상인이 건네는 작은 시식, 낯선 식재료, 오래된 골목의 생활감, 지역 사람들의 표정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다만 그 경험이 불편하면 다시 오지 않는다. 메뉴가 읽히지 않고, 가격이 불분명하고, 동선이 어렵고, 결제가 불편하면 전통은 매력이 아니라 장벽이 된다. 백년시장은 지역다움을 지키되, 고객의 불편을 줄이는 방식으로 세계와 만나야 한다.
지자체와 상인회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백년시장은 상인회 혼자 할 수 없고, 지자체 혼자 밀어붙여서도 안 된다. 정부 공고도 지방정부와 산하기관, 상인회를 필수로 하고, 로컬창업기업, 민간기업, 대학 등이 함께할 수 있는 컨소시엄 구조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시장의 역사와 문화를 행정사업으로만 다루지 말라는 뜻에 가깝다. 상인은 살아 있는 이야기를 갖고 있고, 지자체는 지역자원과 관광정책을 연결하며, 로컬창업기업과 대학, 민간기업은 새로운 해석과 실행력을 보태야 한다.
백년시장은 오래된 시장을 박물관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시장 안에서 지금도 장사하는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고, 그 위에 오늘의 고객이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얹는 일이다. 오래된 상인은 밀려나지 않아야 하고, 새로운 창업자는 시장의 시간과 연결되어야 하며, 지자체는 주변 관광과 교통, 문화자원을 함께 묶어야 한다. 전통은 유리장 안에 넣어 둘 때가 아니라, 고객의 발걸음 안에서 다시 쓰일 때 살아남는다.
백년시장 사업의 성패는 선정 명단에 남는 데 있지 않다.
고객이 시장을 나서며 “여기는 다시 오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에 남는다. 오래된 시장이 백년시장이 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과거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 과거를 오늘의 고객이 걷고, 먹고, 사고, 다시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백년시장의 가치는 오래된 세월에 머물지 않는다. 고객이 그 시간을 경험하고 기억할 때 비로소 시장은 브랜드가 된다.

[필자 소개] 김용한 박사 / 엠아이넥스트 대표
전통시장 및 지역상권 활성화 전문가. 다양한 지역의 전통시장과 상권 활성화 연구용역, 컨설팅과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로컬상권과 관광, 생활인구 확대, 국비공모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책과 칼럼을 통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지역상권 이슈와 대안을 담은 『전통시장과 지역상권 활성화 지원의 역설』, 『모두의 지역상권 점·선·면 전략의 성공 조건』을 출간하였다. misic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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